정물이 사라진 정물의 세계

김정연 l 문화학

수년 전 어느 전시장에서 차영석의 작품 <건강한 정물> 연작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가로 길이가 280cm에 이르는 이 대작은 연필로 그린 수 십 가지의 사물로 가득 찬 종이 작품으로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화분과 화초, 수석, 인형, 조개 껍질, 사진 액자, 트로피, 시계, 항아리, 분재 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물들이 커다란 백지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비어있는 공간에 대한 공포라도 있는 듯 작가는 구성이나 구도를 배제하고 공간을 메우기 위한, 예술이라는 이름의, 집약적 노동행위를 반복하는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필로 묘사된 사물의 형태는 허술하게 일그러져 있고, 일관성 없이 불규칙하게 변하는 시점으로 인하여 <건강한 정물>이라는 작품 제목과는 달리 정물화적 묘사와 구성을 따르지 않음 또한 쉽게 알 수 있었다.

2007-9년 사이에 제작된 <건강한 정물> 연작을 이제와 논하는 이유는 초기작에서 근작에 이르는 차영석의 작품에서 일관성 있게 발견할 수 있는 개인주의적 성향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건강한 정물> 연작의 배경은 ‘웰빙 Well-being’이라는 사회적 관심사가 대두되는 시대적 배경과 상통한다. 웰빙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는 것이기에 특수한 사회 현상이나 시대적 코드로 분석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나 서동욱이 [일상의 모험]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웰빙이란 “극도의 개인주의”에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웰빙이란 결국 ‘나’를 위한 삶이라고 지적한다. “아로마 테라피와 명상에 빠져들고, 같은 수준의 사람들과 만나 점심을 들면서 고상한 한담을 즐기고, 세상을 가득 채운 더럽고 비극적인 광경에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눈을 가리고 조심하여 ‘나의’ 존재만을 윤기 나게 가꾸는 웰빙.”

<건강한 정물>이 비추는 웰빙의 세계는 결국 개인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각기 다른 사람들의 수집품, 건강에 대한 태도, 개인적 취향을 대표하는 개연성 없는 잡동사니들의 무더기이다. 이 같은 작품은 질서도 규칙도 없이 무작위로 나열되어 있는 개인적, 개별적 세계들의 집합체이자 우리가 사는 우주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차영석의 작품에서 분리된 개체들의 개별적 존재 양태는 <습관적 세계>에 이르기까지 같은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물론 <건강한 정물>이 보여주었던 흩어져 버릴 듯 유연하고 미숙한 사물의 물성은 근작에 이르러 견고하고 빈틈없는 단단한 덩어리로 진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강수미가 그의 글 [차영석, 대한민국 오리지널 정물화]에서 지적하였듯이 차영석의 초기작 <건강한 정물>은 고요한 사물의 세계를 묘사하는 전통적 정물화의 경로를 따르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실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습관적 세계>가 보여주는 차영석의 작업은 정물화라는 장르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 작가는 이미 ‘고요한 사물’의 묘사를 멈추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의 대표적인 정물화가 지오르지오 모란디(Giorgio Morandi, 1890-1964)의 작품 변화 과정을 살펴 보면 차영석의 작품이 정물화라는 틀을 벗어나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가는 여정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란디는 일생 동안 정물화에만 몰두한 화가이다. 유사한 형태의 병과 꽃병, 그릇 등이 놓인 단순한 구성의 정물화를 주로 그렸던 모란디는 묘사의 대상이 되는 정물화의 소재보다 소재를 다루는 다양한 예술적 표현과 실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크게 다르지 않은 유사한 대상과 구도 안에서 그의 작품은 전체적인 색조, 분위기, 빛의 효과 등에서 일견 유사해 보이지만 모란디는 이를 통해서 회화의 새로운 영역을 모색하고자 했던 실험적 정물화의 개척자였다. 모더니즘 시대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란디가 정물화를 통해서 실현하고자 했던 예술가적 태도와 관심은 현대의 예술가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나의 가장 큰 관심은 자연 속에, 이 보이는 세계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표현하는 것이다.”라는 모란디의 말처럼 반복적으로 유사한 대상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서 정물화는 대상의 묘사를 넘어서 예술적, 혹은 회화적 표현의 세계를 탐구하고 실험하는 발판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차영석의 작품은 모란디의 것과는 시각적으로도, 그리고 시대적으로도 다른 차원에 속한다. 그러나 정물화라는 장르에서 시작하여 자기만의 방향을 모색하고, 실험해 온 예술가라는 점에서 차영석의 작품은 모란디의 실험적 미술세계를 떠오르게 한다. 오늘날의 예술가들이 갖는 가장 큰 질문이자 어려운 질문이 왜 그리는 가이다. 시각적으로 유사한 작품을 반복적으로 그렸던 모란디에게도 왜 그림을 그리는가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었을 것이다.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예술가들은 동일한 질문을 안고 그림을 그린다. 회화의 기나긴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오늘날의 화가들이 해결해야 할, 혹은 개척해야 할 새로운 예술적 태도나 개념이 등장하기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차영석에게 있어서 그리는 행위는 습관적이고 개인적이며 매우 은밀한 것이라는 점만은 명백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습관적 세계> 연작 가운데에서 <은밀한 습관>이라는 주제의 작품이 중점적으로 선을 보인다. <건강한 정물>이 타인의 개체성, 개인성을 근간으로 한 작품이었다면 <은밀한 습관> 연작은 <건강한 정물>의 형식적 요소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보다는 작가 자신의 개인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발전되어 온 그의 이번 작품에는 초기에 등장한 수 많은 사물 가운데에서 선별한 소수의 형상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전적으로 개인적 선호도에 따라 선별한 사물 가운데 부엉이, 배, 러시아 인형(마트료시카), 스노우볼 등이 빈번하게 그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에 빈번히 등장하는 러시아 인형의 경우 작가는 인형이라는 대상의 특질보다 그 인형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형태감에 초점을 맞춘다. 손에 습관적으로 익은 그 형태의 내부를 결벽증 환자 마냥 치밀하고 흐트러짐 없이 다양한 패턴으로 빼곡히 채우는 행위는 무의식적 혹은 습관적인 작업 방식에 근간을 두고 있다. 대상을 보고 그리지 않기 때문에 작가와 작품의 관계는 매우 개인적이고, 은밀하고, 밀접해진다. 차영석이 탄생시키는 이미지들은 발생의 근원이 없는, 작가의 개인적인 이미지 창고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정물이 아니라 도식화되고 치밀하게 구성된, 그리고 계산된 정물이며, 패턴이나 리듬이 형태를 압도하는 그의 작품에서 전통적 의미의 ‘조용한 사물’은 이제 더 이상 조용하지 않다. 이것이 차영석의 작품을 정물화로 해석하는 오독을 떨쳐내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소수의 사물들이 주축을 이루는 최근 작업에서 대상에 대한 묘사 보다 대상의 형태 및 그 형태를 채우는 방식과 기법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극대화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기와 채우기를 반복하는 매우 지루하지만 ‘습관’적인 작업방식을 통해 그는 자신의 작품이 정물화임을 거부한다. 무엇을 그리는가 보다 형태를 어떻게 그리고 채울지에 대한 관심을 통해 추상적 형태와 리듬감 등의 다양한 회화적 요소들이 자연스레 그 결과물로 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모란디는 색이 지니는 가치와 그 비중을 점차 줄여가면서 작품을 단순화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물론 차영석의 작품은 그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그의 작품은 오히려 단단한 구성과 규칙적인 리듬감을 통해 시각적 유희를 유발한다. 하지만 동시에 모란디가 그랬던 것처럼 그려진 대상에 의미 부여를 거부하고, 시각적 이미지의 창조와 그에 따른 다양한 표현 방식을 쉬지 않고 모색한다는 점에서 차영석 작품의 다음 단계가 더욱 궁금해진다.




A World of Still Life Where Still Life have Disappeared

Jeongyeon Kim l Culturology

I had come across Cha Youngseok’s work, the Well Still Life series, many years ago in an exhibition coincidentally. This masterpiece, which its length reaches up to 280cm, is a paper work filled with dozens of objects drawn with a pencil; countless number of vases, flower plants, dolls, sea shells, picture frames, trophies, clocks, jars, bonsais, etc of various sizes and shapes were filling in the big blank paper. As if having some kind of fear on empty spaces, it seemed as though the artist was repeating the intensive act of labor for filling in spaces, excluding composition or constitution, in the name of art. Nevertheless, the shapes of objects which had been depicted with a pencil are poorly distorted, and one can easily see that, unlike the title of the work Well Still Life, due to the point of view changing irregularly and without any consistency, they do not abide by the descriptions and compositions of a still life.

The reason why I am discussing on the Well Still Life series made between years of 2007 and 2009 now is in order to talk about the individualistic disposition which can be discovered in Cha’s work consistently throughout his earlier works up to his recent works. The background of the Well Still Life series corresponds with the time background in which society’s interest on the so-called ‘well-being‘ had come to the fore. Well-being is something which every human being is interested in; therefore, although it may not need to be analyzed with social phenomenon or periodical code, as Seo Dongwook emphasizes in 『Adventures of the Everyday』 , well-being can be seen to be an ‘extreme individualism’. He points out that well-being is eventually a life for my own self. It is a well-being that makes people fall into aroma therapy and meditation, have lunch and enjoy sophisticated backtalks with people of their standards, being careful, blinding our eyes so as to not get our minds distracted by dirty and tragic scenes filling the world and glossing my existence only.

The world of well-being which Well Still Life reflects is eventually a depiction of the cross section of individualism, an irrelevant mass of odds and ends, representing collections, attitude on health and personal taste of other people. Such kind of work may be an assembly of personal and individual worlds listed randomly without order or rules, and also, the image of the universe we live in. Up until Chronic Circumstance, individual existential forms of separated entities in Cha’s work developed in the same direction. Indeed, one can confirm the fact that the property of manner of the flexible and immature objects, seeming as if it would scatter away, shown in Well Still Life, had evolved into a firm and airtight solid mass in recent works. As Sumi Kang pointed out in her critique 『Cha Youngseok, Original Still Life of Korea』, Cha’s earlier work, Well Still Life, follows the route of traditional still life depicting the world of silent objects, and it may be seen as an experiment for overcoming it. However, Cha’s work shown in Chronic Circumstance, no longer remains in the genre of the so-called still life. It is because the artist had already stopped representing ‘silent objects’.

You might be able to understand the journey of the art world which Cha’s work is building, free from the frame of the so-called still life, more easily if you examine the change process of the works of Giorgio Morandi, a representative still life painter of the 20th century. Morandi is a painter who buried himself in still life, only his whole life. Morandi, who usually painted still life of simple composition where similar shapes of bottles, vases, plates etc were laid, was more interested in various artistic expression and experiments than the subject matter of still life, which is the object of representation. Although his work, at a glance, seems similar in its overall tones, atmosphere, light effect, etc, within the not-so-different, similar objects and compositions, Morandi was a pioneer of experimental still life painting, trying to search for a new territory of painting through it. It seems, even though Morandi lived in time of Modernism, his artistic attitude and interest, which he wanted to realize through still life, is not much different from contemporary artists. Like Morandi’s words, “My greatest concern is to express what is in nature, this visible world”, through the act of drawing similar objects repeatedly, still life had gone beyond the representation of objects to become the stepping stone exploring and experimenting the world of artistic, or painterly expression.

Cha’s work falls under a different dimension, visually and periodically, from that of Morandi’s. However, from the point that he is an artist who began from the genre still life, pursued and experimented his own direction, Cha’s work reminds us of the experimental art world of Morandi. The biggest and most difficult question artists today have is, why paint? Even to Morandi who repeatedly painted visually similar works, why paint would have been the fundamental question. Even today, after a hundred years, artists paint bearing the same question. Looking back on the long history of painting, coming of a new artistic attitude or concept, which artists of today must solve or pioneer, doesn’t seem to be that easy. Merely, the fact that the act of drawing to Cha is habitual, personal and very private is clear.

In this exhibition, among the Chronic Circumstance series, works on the subject called Confidential Custom are being shown in priority. Had Well Still Life been a work based on individuality and personality of others, Confidential Custom series, although it maintains the formative elements of Well Still Life, it focuses on the artist’s own personality rather than of others. In his work this time, developed from amid unawareness, appears minority of forms selected among the many objects that have appeared repeatedly in the earlier works. One can confirm owls, pears, matryoshka, snowballs, etc drawn frequently among the objects selected entirely according to personal preference.

In case of matryoshka, frequently appearing in the work, the artist focuses on the peculiar shape the doll possesses rather than the characteristic of object of the so-called doll. The act of filling in the insides of the shapes, which have become accustomed to the artist’s hand, meticulously and without a mess with various patterns as if he was a mysophobic, is based on the unconscious or a habitual working method. Because the artist does not draw by observati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rtist and work becomes very personal, private, and intimate. It is because the images Cha creates are ones that had been brought from the artist’s personal image warehouse where there is no origin of occurrence. In his work, which is not a still life of the everyday but a still life made into diagrams, minutely composed and calculated, and where patterns and rhythm prevail shapes, the traditional meaning of ‘silent objects’ is no longer silent. This is the reason why we must shake off the misreading which interprets Cha’s work as a still life.

In recent works where these few objects form the principal axis, one can confirm the fact that rather than the representation of objects, the artist’s concern on the object’s shape and the method and technique of filling in the shape is being maximized. Through the very dull but ‘habitual’ method of work, repeating the drawing and filling in, he refuses to say that his work is a still life. Through his concerns on how one must draw a shape and fill it in rather than on what to draw, one can confirm the fact that various painterly elements of abstract shapes, rhythm, etc naturally appear as the result.

Morandi showed us the process of simplifying the work, gradually decreasing the value and importance in which colors possess. Cha’s work, of course, developed towards a different direction. His work, rather, induces visual pleasure through solid composition and regular rhythm. However, at the same time, from the point that he rejects to give meaning to the drawn objects like Morandi, and his on and on pursuit for creation of visual images and various expression methods accordingly, I become ever more curious on what the next step of Cha Youngseok’s work would be.